일상

<일상> 오늘만 잘 사는 삶

오브저널 2021. 5. 21. 11:42

백조

프리랜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생각 끝에 다른 프리랜서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검색을 해 보았다. 그들도 대부분 고정수입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프리랜서는 이름 자체가 굉장히 자유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절대로 프리 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매달려있다. 휴일에도 일하고 공휴일에도 일하고, 내일 할 일 당겨하는 삶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안식을 가지기 위해 학원강사일을 하기로 했다.

 

학원강사를 처음 한건 대학을 졸업하고 하고자 하는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후였다. 그때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피곤해서 나가떨어져 자야 스트레스가 덜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어학원 강사를 했다. 그것도 아주 피곤하면서도 극도의 업무적 스트레스에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초등학생과 예비 중학생을 가르치는 강사를 지원했다. 그때 당시에 함께 일하시던 분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라 적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울적한 기분을 바쁜 와중에 묻을 수 있었다.

 

인생의 첫 출근으로 쳐야 하는 그 학원에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 지금도 유명한 가수가 찾아왔었다. 내 담당인 학생의 사촌형이 아이돌 가수였는데, 그 가수가 학원에 와주었었다. 사촌 형을 매번 자랑했지만 친구들이 믿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고향에 내려온 아이돌 가수 사촌 형을 학생의 어머님이 데려와주셨다. 그날은 모든 수업이 마치고 조용학 학원에 오로지 수업하는 반은 내가 가르치는 반뿐이었다.. 수업 중 학원 부원장님이 OO이 가수 형이 왔다고 전해 주셨고, 찾아온 유명 가수 덕에 여학생들은 나가서 모두 인사를 했다. 나는 노트에 싸인 정도는 받는 행운을 가져도 되지 않겠나 싶어 애들에게 노트를 챙겨 보냈다.

 

그런데, ! 한 번씩 그때 그 싸인 받은 여학생들이 받은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카페에 자랑삼아 싸인을 찍어 올렸는지 검색해 보는데,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영어노트에 받은 싸인을 잃어버린 거라면 내 속이 다 쓰리다. 앨범 몇백 장은 사야 볼 수 있는 가수를 코앞에서 보고 받은 싸인을 평생 간직하면 좋은 추억이 될 텐데.나는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나가지도 못했다. 남학생 서너명이 끝까지 자기들은 남자 가수에게 인사하러 가기 싫다며, 채점해달라고 교실에서 공부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교실의 창 너머로 그림자만 보았었다. 애들은 똑똑해서 선생님은 수업해야지 어딜 나가냐며 나의 직분을 똑 부러 지게 말하는 바람에 근처도 못 갔다. 그래도 학원에서 있었던 많은 에피소드 중 이 신기한 경험은 참 오래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는데, 이 일은 참으로 좋으면서도 숨막히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길 고양이를 만났고, 나는 이 길고양이들을 데려오고 싶어서 작업실을 얻었다. 월세살이의 설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원하는 위치와 고양이 양육이 가능한 집주인분을 찾는데, 몇 개월이 걸렸다. 프리랜서 수입에서 안정적으로 월세를 내고 세금을 내는데 필요한 고정수입을 위해 또다시 학원 강사로 입사를 해 투잡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첫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약간의 긴장감이 싫지 않았고, 초등학생들을 오랜만에 보니 귀여웠다. 나는 본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심각하던 때를 떠올리면 아마 10대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내일 걱정, 몇 년뒤의 걱정을 앞당겨하느라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이제 나의 신조는 오늘만 살자.’이다. 오늘의 작은 행복을 느껴가며 사는 것이 내일을 잘 맞이 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수업은 열심히 잘해야겠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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